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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시간 속에서 피어난 삶의 철학, 영화 '모리의 정원'

by jeilee1 2025. 5. 13.

영화『모리의 정원』은 노년의 고독과 자연에 대한 경외, 삶의 미학을 담아낸 감성적인 영화입니다. 은둔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조용히 흐르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정원의 시간 속에서 피어난 삶의 철학자 모리 요시노리의 삶을 알아봅니다.

 

영화 모리의 정원 포스터 일부분
영화 '모리의 정원'

정원 밖을 나가지 않은 화가, 모리 요시노리

『모리의 정원』(2018)은 일본의 실존 화가 모리 요시노리의 삶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그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채, 자신의 집 정원 안에서만 생활한 예술가로 유명합니다. 정원이 그의 세상이자 우주였으며, 예술의 근원이었습니다. 영화는 그의 하루를 따라가며, 노년의 고독이 아닌 내면의 충만함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모리는 정원을 바라보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그 시간이, 그의 시선 속에서는 생명이 자라는 역동의 연속입니다. 영화는 한 노인의 움직임을 거의 배제하고, 오히려 그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관객을 정원의 시선으로 이끕니다.

노년의 삶, 자연과 하나 되는 예술

영화 속 모리는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지 않지만, 결코 무기력한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원 속 생명체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기억하며,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사유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정원을 거대한 캔버스로, 혹은 끝없는 우주로 바라보며, 자연이 선사하는 무한한 조화를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그의 아내 히데코는 말없이 그의 곁을 지킵니다. 히데코 역시 정원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모리와 공존하며, 평온한 일상을 공유합니다.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와 정이 서로를 지탱해줍니다. 이 부부의 모습은 노년기 관계의 이상적인 형태처럼 다가오며,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제공합니다.

정원이라는 우주에서 피어나는 감각의 미학

정원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입니다. 영화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다룹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고요한 새소리,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방울 하나까지도 카메라는 놓치지 않습니다. 관객은 마치 그 정원 안에 앉아 모리와 함께 자연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이 정원은 곧 기억의 공간이자 감정의 보관소입니다. 과거의 삶이 녹아 있고, 현재의 순간이 축적되며, 미래의 여운까지 암시합니다. 자연이 계절마다 달라지듯, 모리의 시선과 감각도 그 흐름을 따릅니다. 이는 곧 삶과 예술이 얼마나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시간의 속도를 늦추는 삶, 그 안의 철학

『모리의 정원』은 우리가 익숙한 '이야기 중심' 영화가 아닙니다. 플롯보다는 감각의 흐름, 행동보다는 정서의 떨림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빠르게 소비되는 현대인의 시선에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한 걸음 멈춰 서서 바라보면 삶의 본질을 되묻게 됩니다.

모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매일 무엇을 보고 있나요?”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빠른 속도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정원의 하루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새의 울음, 풀의 성장, 계절의 변화를 통해 그는 인생의 본질을 체감합니다. 영화는 이 느림의 미학을 통해, 노년의 시간이 얼마나 깊고 풍요로운지를 조용히 말해줍니다.

마무리하며 – 노년, 사라지는 것이 아닌 완성되는 시기

『모리의 정원』은 인생의 마지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완성되는 시기임을 상기시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정원에 머무는 모리의 모습은 무척 평온하지만 강한 울림을 남깁니다. 우리는 나이 듦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나이듦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모리의 정원』은 소리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는 영화입니다.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조용한 울림을 지닌 노년 영화의 걸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