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에 참여한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이다. 이 영화는 헬렌 필딩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사랑, 커리어, 자존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솔직하게 그려낸 현대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입니다. 이후 브리짓 존스 시리즈로 여러 작품이 개봉되었다.
브리짓이라는 캐릭터가 특별한 이유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다른 어떤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현실적인 여성 주인공을 앞세웁니다. 30대 중반, 싱글, 흡연자, 체중 증가에 늘 신경 쓰는 평범한 여성 브리짓은 더 이상 '완벽한 주인공'의 전형에 기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솔직하고, 엉뚱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인간적인 모습으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르네 젤위거는 이 역할을 위해 체중을 늘리고 영국식 억양을 연습하는 등 캐릭터에 몰입했고, 결과적으로 ‘브리짓 존스’는 단순한 영화 캐릭터를 넘어 여성들의 자아를 투영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을 찾아 나서는 여주인공'이라는 오래된 로맨스 공식을 따르면서도,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여정'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더합니다. 브리짓은 완벽한 연애를 꿈꾸지만,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 동시에 스스로를 더 이상 깎아내리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두 남자 사이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
브리짓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축은 두 남성 캐릭터, 다니엘(휴 그랜트)과 마크(콜린 퍼스) 사이에서의 갈등과 선택입니다. 다니엘은 자유롭고 매력적인 상사로 브리짓의 판타지를 자극하지만, 진지한 관계에는 미온적인 인물입니다. 반면 마크는 처음엔 냉소적이고 거리감 있는 듯 보이지만, 점점 진심을 드러내며 브리짓의 진정한 지지자로 자리 잡습니다. 이 구도는 단순한 삼각관계를 넘어, ‘겉보기의 매력’과 ‘내면의 신뢰’ 사이에서 주인공이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특히 마크가 브리짓에게 “너는 지금 모습 그대로가 좋아(Just as you are)”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응축한 명대사입니다. 이 말은 브리짓이 그동안 느껴왔던 자기혐오와 불안감을 무너뜨리고,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단지 연애의 성공이 아니라, ‘자기 수용’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해방을 그리고 있습니다.
리처드 커티스의 손길이 만든 따뜻함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은 헬렌 필딩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리처드 커티스와 앤드류 데이비스가 공동으로 맡았습니다. 커티스는 이미 『노팅 힐 』 ,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인간적인 유머와 따뜻한 감정선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이 작품에서도 그 진가는 여전합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고 살아 있으며, 인물들 간의 대화에는 감정과 관계의 미묘한 결이 섬세하게 배어 있습니다. 브리짓의 친구들, 가족, 직장 상사 등 주변 인물들도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성장에 기여하는 존재로 배치됩니다. 그중에서도 브리짓의 엄마는 전형적인 ‘비혼 딸 걱정형 부모’이지만, 영화 후반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며 브리짓과 일종의 평행을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조명하며, 누구나 어느 순간엔 브리짓일 수 있다는 보편성을 확보합니다.
사랑과 자존감 사이에서 균형을 찾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단순히 연애에 성공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가 결혼이나 연애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다른 결을 보여주며, 이후 수많은 여성 서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브리짓은 영화 속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실수하며, 오해하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다시 일어나며, 자신이 누군지 조금씩 더 정확히 이해해갑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난 사랑은 어떤 이상화된 로맨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진정한 관계입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여성 성장 서사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이 외 르네 젤위거가 구사하는 완벽한 영국 액센트를 듣고 있으면 그녀가 당연히 영국인일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녀는 미국 텍사스 출신이다. 영국 액센트를 잘 구사하는미국인, 이 점도 매우 놀라운 부분이다.